"삼성전자만 따라해도 될까요?"…까다로워진 공시에 '한숨' [돈앤톡]

입력 2023-10-26 08:17   수정 2023-10-26 09:47


"공시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골치가 좀 아픕니다. 그래도 삼성전자만 참고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기업들의 표준이라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최근 한 코스닥 상장사와의 자리에서 언급된 말입니다. 갈수록 공시 기준이 촘촘해지면서 상장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또 변화하는 사회 흐름을 반영하기 위한 공시 제도 변경은 불가피하지만, 가뜩이나 복잡한 공시를 새로운 기준에 따라 매번 작성해야 한다는 건 실무진 입장에서 큰 부담입니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 상장사가 느끼는 애로사항은 더 큽니다. 당초 공시 업무만 담당하는 직원이 별도로 없을뿐더러, 공시 담당자가 있더라도 1년이 채 안 돼 교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니 야금야금 바뀌는 공시 제도를 따라가기 벅찬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로봇 등을 정관에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상장사가 늘면서 신사업 추진경과, 계획 수립 여부 등에 대한 공시가 의무화됐는데요, 사실상 전통산업에 줄곧 계셨던 분이라면 이런 변화에 다소 둔감할 수 있겠죠. 제아무리 공시 전문가여도 새 회사는 이전 회사와 다른 지침이나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어 까다로운 건 매한가지라는 게 일부 공시 담당자들의 하소연입니다.


물론 공시 개정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진 건 아닙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협회 차원에서 개정 관련 안내문을 각 상장사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정안을 주시할 순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다소 갑작스러울 때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한 코스닥 상장사의 공시담당자는 "과거에 비해 설명회도 줄었고, 의견수렴 폭도 넓게 진행되는 것 같지 않다"며 "지침이 바뀌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코스닥협회 등 금융당국이나 협회에서는 이 같은 상장사들의 고충에 공감하고 공시 관련 교육을 수시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변경된 제도를 알리는 설명회도 매해 진행합니다. 올해는 서울에서 두 번, 부산에서 한 번 열렸습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공시 책임·담당자는 거래소 등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매년 혹은 2년마다 일정 시간 이상 들어야 하는데요.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으로부터 공시 책임·담당자의 교체를 요구받거나 벌점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기본기가 어느 정도 잡혔다고 하더라도, 실무에 곧바로 적용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구체적인 예시가 주어지더라도 몇 번 해보지 않는 한,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한 공시 담당자는 "정기공시를 작성할 때 사용되는 다트 편집기에 '기재상 주의' 등의 작성 지침이 안내되지만, 정작 작성하려고 보면 감을 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앞선 공시를 낸 다른 상장 기업의 사례를 참고한단 후문입니다. 아무래도 삼성전자와 같이 큰 기업의 공시일 가능성이 높겠죠.

작은 기업 대비 공시 담당자가 자주 바뀌지 않고,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단 점에서 공시 완성도가 더 높을 것이란 인식이 있어섭니다. 실제로 금감원 교육자료에 언급된 공시 작성 우수 사례 대부분이 포스코퓨처엠, KT, 메리츠증권, LG유플러스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업체들입니다.


한 코스닥 상장사 A임원은 "새로운 공시 제도는 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에 먼저 도입되고, 이후 확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후발주자들이 큰 기업의 공시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며 "만약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에 동시 적용되는 개정 내용이라면 코스닥 기업으로선 참고할 만한 공시 사례가 없어 담당자가 느끼는 혼란은 배가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공시 담당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도 서로의 노하우가 공유되곤 합니다. 이곳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거래소 공시부에 문의하는 수순이란 얘기가 나옵니다. 상장사들은 공시 전 거래소에 상담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거래소 공시부 B관계자는 "코스닥 기업의 경우 충분한 맨파워가 없을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공시 내용에 대해 숙지가 안 돼 있을 수 있다"며 "부족한 부분을 일일이 짚어주고, 계약서 등 첨부서류가 필요한지 모두 설명해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코스닥 상장사만 1700개에 육박합니다. 이들 중엔 적자 기업, 중소기업도 많습니다. 거래소 직원들도 감당하기 버거울 수 있단 얘깁니다. 특히 1~3월 정기결산 시즌에 공시가 몰리면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B관계자는 "거래소 공시 담당 직원들이 인당 70~80개 업체를 맡게 된다"며 "식사 시간도 내놓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업지배구조 공시가 화두입니다. 기업지배구조 공시는 내년부터, ESG 공시는 2026년 이후 시행이 예정됐지만, 적잖은 혼란이 예상됩니다. A임원은 "지금 당장 공시 부담이 있는 쪽은 자산총액 규모가 큰 기업들일 것"이라며 "코스닥 기업의 경우 지금 당장은 자유롭지만, 적용이 확대되는 시점이 오면 큰 어려움에 닥칠 수 있을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적잖은 혼란이 예상된다"고 귀띔했습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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